알아야 할 배경지식 · 목차 04/30 불교미술과 통일신라: 석굴암·불국사
불교는 통일신라의 건축과 조각을 어떻게 바꿨을까요
석굴암·불국사와 성덕대왕신종으로 믿음이 돌과 쇠에 남긴 흔적을 살펴봅니다

읽기 전에 먼저 풀어 보세요
먼저 한 문제
석굴암은 인도나 중국의 석굴과 만드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알아야 할 배경
통일신라 때 불교는 믿음에 머물지 않고 건축과 조각의 모습까지 바꿨습니다. 그 대표가 경주 토함산에 있는 불국사(산의 서쪽)와 석굴암(산의 동쪽)입니다. 두 곳은 1995년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 누가 지었을까요? 고려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751년에 공사를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이 세상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지금의 석굴암)를 세웠다는 기록입니다. 김대성이 774년에 완공을 보지 못하고 숨지자 나라가 공사를 마쳤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절이 아니라 신라 왕실을 위한 절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석가탑에서 나온 고려 때 문서에는 불국사 공사가 742년에 시작됐다고 적혀 있어, 석굴암도 더 일찍 계획됐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 불국사는 화엄종1 사찰로 세워졌습니다. 신라 사람들이 꿈꾼 부처의 나라를 이 땅에 옮겨 놓은 절로 평가됩니다. 임진왜란 때 80여 동의 건물이 모두 불탔지만 돌다리와 석탑, 금동불은 화를 피했습니다.
- 마당의 두 탑은 생김새가 전혀 다릅니다. 석가탑은 신라 삼층 석탑의 본보기가 되는 비례를 갖췄고, 다보탑2은 앞선 예가 없는 독특한 모양입니다. 다보탑은 경전 『법화경』 속 칠보탑을 실제 건축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두 탑은 1962년 12월 20일 각각 국보가 되었습니다.
- 석굴암은 인도나 중국처럼 자연 바위를 파서 만든 석굴과 다릅니다. 다듬은 돌을 쌓고 바깥을 흙으로 덮은 인공 석굴입니다. 공간은 1과 √2를 활용한 비례로 짜였습니다. 석굴의 중심인 본존불3은 오른손으로 땅을 짚는 항마촉지인4 자세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냅니다. 석굴암에는 본존불을 포함해 모두 38구의 불교 조각이 있습니다. 바깥쪽에는 부처를 지키는 신들(팔부중·금강역사·사천왕)을, 안쪽에는 보살과 제자를 두어 불교의 위계에 따라 배치했습니다. 당나라의 새 조각 양식을 받아들여 신라만의 모습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주 뉴스와 연결
같은 시대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성덕대왕신종입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이 종을 소리로 풀어낸 기획공연 「소리: 성덕대왕신종」을 엽니다. 생황·양금 연주와 사람 목소리에 영상과 무대 연출을 더했습니다.
- 공연은 종을 둘러싼 숫자 세 개로 3부를 꾸몄습니다. 1부 √2는 종의 생김새 비례와 탄생을, 2부 64Hz는 깊고 낮은 울림을, 3부 771년은 종이 완성된 해와 그 안에 담긴 바람을 다룹니다. 앞에서 본 석굴암 공간에도 1과 √2의 비례가 쓰였습니다.
-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의 범종5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입니다.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르며,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습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 종을 만든 뜻도 불교와 이어집니다. 성덕왕의 공덕을 종에 담아, 종소리가 퍼지듯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복을 누리기를 빌었습니다. 성덕왕의 아들 경덕왕이 일을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이 이어받아 완성했습니다. 종 몸체에 긴 글을 도드라지게 새긴 점은 신라 종에서 흔하지 않은 특징입니다.
공연의 예술감독인 조용경 한양대 교수는 박물관에서 눈으로만 보던 유산을 소리로 겪어 보게 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 5범종 절에서 불교 의식에 쓰는 종입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상원사 동종과 함께 통일신라 범종을 대표합니다.
면접에서 이렇게 써먹기
'목표가 기술을 이끈 경험'이나 '전통을 새롭게 전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이 회차를 쓸 수 있습니다.
- 석굴암은 왕실의 든든한 지원, 오래 쌓인 기술, 공학 지식이 함께 있었기에 지을 수 있었습니다. 부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기술과 사람을 한데 모은 사례로 말할 수 있습니다.
- 석굴암은 본존불을 방 한가운데보다 조금 뒤에 두었습니다. 입구에서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불상이 정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배치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설계한 사례로, 쓰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와 이어 말하기 좋습니다.
- 성덕대왕신종 공연은 눈으로 보던 유물을 소리로 만나게 했습니다. 같은 자산이라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면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전할 수 있다는 예로 들 수 있습니다.
- 다만 창건을 김대성 한 사람의 일로만 말하기보다, 나라가 공사를 마쳤고 왕실을 위한 절이었다는 견해도 있다고 덧붙이면 더 정확합니다.
면접에서 왜 중요한가
종교라는 분명한 목표가 기술과 예술을 어떻게 끌어올렸는지 보여 주는 대표 사례라, 목표·협업·사용자 중심 설계를 묻는 면접 질문에 역사적 근거로 쓰기 좋습니다.
세 문제로 확인하기
복습 1 / 3
경덕왕이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성덕대왕신종을 이어받아 완성한 왕은 누구일까요?
복습 2 / 3
불국사 다보탑의 독특한 모양은 무엇을 재현한 것으로 볼까요?
복습 3 / 3
석굴암 본존불의 항마촉지인(오른손으로 땅을 짚는 손 모양)은 무엇을 나타낼까요?
출처 5개 보기
이 회차는 AI가 출처를 바탕으로 초안을 쓰고 운영자가 확인해 발행했습니다. 기사 문장을 옮기지 않고 사실만 새로 썼습니다.